율곡 이이에 대하여(4학년 4반 6번 민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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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민순정 | 등록일 | 18.05.07 | 조회수 | 42 |
첨부파일 | |||||
율곡 이이의 생애와 사상(1536~1584)
1. 생애 이이의 호는 율곡이며, 깊이 있는 학문으로 조선 성리학의 뛰어난 유학자 중 하나로, 여러 가지 사회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이이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이원수는 사헌부 감찰이었으며,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덕이 높고 학문과 글, 그림에 능한 문인이자 예술가였다. 이이는 일찍이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세 살 때 글을 깨우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29세에는 문과에 장원 급제를 하여 명종과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 그 때 <<동호문답>> , <<만언봉사>>, <<성학집요>>등을 써서 왕에게 올렸다. 왕에게 첫째로 어질고 재능있는 인재를 뽑을 것, 둘째로 군사와 백성을 기르고 돌볼 것, 셋째로 부족한 재물을 채울 것, 넷째로 국경과 병영을 튼튼하게 할 것, 다섯째로 전쟁용 말을 갖출 것, 여섯째로 올바른 가르침으로 이끌 것 등의 ‘시무육조’를 지어 바쳤다. 그리고 미리 군사를 양성하자는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동인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뒤 49세인 1584년에 세상을 떠났다. 2. 사상 조선의 대표적 성리학 학자인 이이는 ‘주기론’을 주장했다. 이이는 우주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이’는 현실 속에서 ‘기’를 통해 가능해지기에 ‘이’와‘기’는 서로 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이이는 성리학의 이론 뿐 만 아니라 현실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변화되어야한다는 ‘주기론’을 주장한다. 현실을 중요시한 이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나라가 어지러울 것을 예측하고 10만 명의 군사를 키워야 한다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개혁을 주장한 이이의 이러한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들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호학파'를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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