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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을 소중히 여기는 쫄리 신부님. 3학년 1반 박수진
작성자 박수진 등록일 14.08.06 조회수 152

8월 6일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우리 신부님, 쫄리 신부님이'라는 책이 내 손에 잡혔다. 많이 읽은 적이 없어 어떤 내용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께서 홀로 10남매를 키워야 했다. 10남매인데도 어머니의 온화한 성격 때문인지 10남매 모두가 하나 같이 성품이 바르고 똑똑했다. 이태석 신부님은 어렸을 때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거지의 옷을 꿰매어 주었다. 그리고 습득력이 빨라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도 빨랐다. 신부님의 맨 처음 꿈은 의사여서 외과대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는 바뀌어서 신부님을 하기로 결심했다. 신부님이 된 뒤로 모두들 가기를 선택하지 않는 아프리카 남수단에 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신 신부님. 신부님은 그곳을 보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 어떻게 이런 곳이 있지? 한국 하고는 딴판이었다. 전기도 없고, 제대로 된 건물 하나도 없고, 심지어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도 없었다.

또 한낮의 기온 50'c를 오르내렸고 오염된 흙탕물에 수수죽으로 하루 한 끼만 겨우 먹고 살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남수단과 북수단이 전쟁 중이었는데 더 발달된 북수단이 남수단보다 강력했다.

전쟁 때문에 묻어 둔 지뢰를 밟아서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 말리리아와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 굶주려서 나무 아래에 축 늘어진 사람들...... 책으로 읽어도 너무 끔찍하고 너무 불쌍하다.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까 그들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는 병원조차도 없어 치료를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님이 오시고 나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신부님은 직접 치료를 했다. 그리고 케냐의 나이로비까지 가서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발전 시설을 사 와서 전기를 들어오게 해주셨고, 병원을 짓고, 사람들의 신발을 주문해서 샌들을 마련해 주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있어서 잘못하면 옮을 수 있는데도 직접 치료를 해 주셨다. 나보다 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신부님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다가 잠시 한국을 돌아와 검진을 받다가 대장암 3기라는 아주 무서운 말을 들었다. 그래도 수단으로 돌아가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고 어머니께서 걱정 하실까봐 말을 하지도 않으셨다. 급히 치료를 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던 상태....... 결국 이태석 신부님 즉 쫄리 신부님은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조용히 눈을 감으시고 말았습니다. 정말 감동을 받았다. 아무리 내 목숨이 위태해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 난 그런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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